구글의 선택적 승리: AI 시대의 반독점 판결이 던지는 질문들
21년 만에 미국 정부가 도전한 테크 거대기업 해체 시도가 반쪽 성과로 마무리됐다. 워싱턴 D.C. 연방법원 아미트 메흐타 판사가 9월 2일(현지시간) 내린 판결에서 구글은 크롬 브라우저 매각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분할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승리로만 해석되기엔 판결이 담고 있는 함의가 복잡하다는 평가다.
AI시대에도 구글 독점 평가 유효한가...판사의 고민
메흐타 판사는 226쪽 분량의 판결문에서 "일반적인 사건에서는 법원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분쟁을 해결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법원이 수정구슬을 들여다보며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정확히 판사의 특기는 아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이는 단순한 자조적 표현이 아니라, AI 혁명이 진행되는 와중에 과거의 독점 행위를 처벌하는 현실적 딜레마를 드러낸 것이다.
실제로 판사는 "생성형 AI의 출현이 이 사건의 경과를 바꾸었다"며 "이 분야로 흘러들어가는 자금과 그 속도가 놀랍다"고 평가했다. 구글이 검색 시장을 '투자 금지 구역'으로 만들었던 과거와 달리, OpenAI의 ChatGPT, 앤트로픽의 클로드, 퍼플렉시티 같은 AI 챗봇들이 구글의 전통적인 검색 패러다임을 위협하고 있다는 현실적 변화를 인정한 것이다.
애플의 200억 달러 딜레마
가장 주목할 부분은 구글이 애플에 매년 200억 달러를 지불하며 유지해온 기본 검색엔진 계약이 계속 허용된다는 점이다. 애플은 법정에서 이 계약 금지가 혁신 연구에 투입할 자금을 박탈할 뿐만 아니라, 의도치 않게 구글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소비자들이 어차피 구글 검색을 선호할 것이라면, 구글이 그 돈을 주머니에 넣는 것만 남는다는 논리였다.
이는 현대 디지털 생태계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단순히 독점 기업을 처벌하는 것이 경쟁을 촉진하는 최선의 방법인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알파벳 주가가 시간외 거래에서 8% 급등한 것도 투자자들이 이를 '최소한의 처벌'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데이터 공유라는 새로운 실험
대신 법원이 선택한 해법은 데이터 공유다. 구글은 수조 건의 검색 쿼리에서 축적한 검색 인덱스와 사용자 상호작용 데이터를 '자격을 갖춘 경쟁사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광고 데이터는 제외되며, 6년간 적용되는 이 조치를 감독할 특별 기술위원회가 설치된다.
구글은 즉각 프라이버시와 보안 우려를 제기했다. "사용자의 가장 민감하고 사적인 검색 쿼리를 당신이 들어본 적도 없는 회사들과 공유하도록 강요받는 것"이라는 구글의 반박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독점의 '과실'을 나누어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법원의 의도도 이해할 만하다.
21년 만의 도전, 그 후
이번 시도는 2004년 마이크로소프트 분할 시도 실패 이후 21년 만에 정부가 민간 기업 해체를 추진한 사건이었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성공은 아니었지만, 그 영향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메흐타 판사는 연방법원에서의 반독점 재판 자체가 구글에게 '예방적 효과'를 미쳤다고 평가했다.
흥미롭게도, 월스트리트 일부 분석가들은 이번 판결이 오히려 구글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번스타인의 분석가들은 "구글이 검색 유통 거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제한된다면, 그 자금을 다른 어떤 사업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을까? 제미니다"라고 전망했다. 애플에게 주던 200억 달러를 AI 개발에 투입한다면 더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래를 향한 질문들
이번 판결은 여러 층위의 질문을 남긴다. 첫째, AI 시대에 전통적인 반독점 접근법이 여전히 유효한가? 둘째, 데이터 공유가 진정한 경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셋째, 중국과의 AI 패권 경쟁 상황에서 자국 기업 약화가 바람직한가?
구글과 법무부 모두 항소를 예고한 상황에서 최종 판결까지는 수년이 더 걸릴 전망이다. 그 사이 AI 혁신은 계속될 것이고, 검색 시장의 지형도 변화할 것이다. 애플의 에디 큐가 법정에서 사파리 브라우저를 통한 검색량이 22년 만에 처음 감소했다고 증언한 것처럼,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결국 이번 판결은 구글의 완승도, 정부의 완패도 아닌 '조건부 승리'다. 진정한 승부는 앞으로 6년간 데이터 공유와 경쟁 촉진이라는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에 달려 있다. 메흐타 판사가 말했듯이, 수정구슬을 들여다보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다.